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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레와 살아있는 인형

 

페트루슈카라는 발레를 아는 사람은 흔히 니진스키나 발레 뤼스만 훑는 경우가 많다. 한데 그 배후에 깔려 있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맥락이 꽤 흥미롭다. 그 단서 중 하나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자동인형이라는 설정이다. 여기서 살아있는 인간의 신체까지 기하학으로 환원시키는 기계주의의 욕망을 눈치 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기계에 내포된 미래주의적 낙관을 전망하던 시기였지만, 페트루슈카에는 일종의 멜랑콜리가 깃들어 있다. 인간의 몸이나 신체, 정서, 광기 등은 아무래도 이성의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붙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무엇, 파악 불가능한 무엇으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의 산실은 카바레다. 다다이스트들의 놀이터였던 게 '카바레 볼테르' 아니던가. 러시아도 그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페트루슈카의 모티브가 된 살아있는 인형은 이 가운데서 출현한다. <페트루슈카> 작품이 제작될 당시,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초 유럽에 퍼져 예술가들의 모임장소이자 문화의 산실이었던 카바레가 러시아에 유입된다. 그리하여 1908년 모스크바 카바레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극장에서 생겨나게 된다. 이는 유럽의 흐름에 부응하는 한편 극장에서 배우들을 위해 마련한 카푸츠니크(Kapustnik), 즉 사순절을 앞둔 양배추 파티의 축제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카바레 - 새로운 예술공간의 탄생>이라는 책을 참고하자면, 당시 패러디와 애드리브의 명수로 활력이 넘치던 단역 배우 니키타 발리예프가 배우와 작가, 가수, 작곡가의 공연과 만남의 장소가 된 카바레 ‘모스크바 박쥐’를 여는 데 앞장섰다. 이곳에서는 발리예브의 사회로 단막극과 노래, 패러디, 춤 등으로 꾸며진 레퍼토리에 체호프의 단편과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극화한 작품, 오페라로 각색한 푸슈킨의 <눌린 백작>과 <스페이드의 여왕> 등을 공연했다.

이 카바레 '모스크바 박쥐'는 배우, 작가, 작곡가, 가수의 공연과 만남의 장소로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도 일원이었다고 한다. 또한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에서 무대미술을 담당했던 레옹 박스트가 ‘모스크바 박쥐’의 디자인을 맡았다. 당시의 카바레는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의 집합소로 러시아의 유명 발레리나이자 페트루슈카의 주역이기도 한 타마라 카르사바나도 카바레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하니, 벌써부터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역시나 위의 책에서 기술하다시피, 발리예프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과감하고 혁신적인 것이 바로 ‘살아있는 인형극’이었다고 한다. 살아 숨 쉬는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나무 형상으로 꾸며 인형과 인간의 관계를 뒤집는, 화려한 디자인과 볼거리의 공연이었다. 발리예브의 ‘살아있는 인형극’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언제 자동인형 같은 존재로 변할지 모른다는 낭만주의적 불안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인형들은 더 고귀하고 순수한 생명,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 기계의 완벽함을 지니고 기하학적인 춤을 추는 형이상학적 피조물이었다.

인형들은 상징주의자들이 사랑한 어릿광대 익살극이나 동시대의 단편을 각색한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인형들은 마법을 부린 듯이 꼭두각시에서 인간, 다시 꼭두각시 사이를 오갔다. 발리예프는 점차 러시나의 민담과 동화, 춤, 심지어 러시아 예술사의 대표적인 그림들을 형상화하는 데까지 폭을 넓혔다.

살아 있는 인형극은 회화 못지않게 언어 의존도가 낮았으므로 이들의 명성은 곧 러시아 밖으로 뻗어나갔다. 1919년 혁명 이후 발리예프가 파리로 건너가 세운 또 다른 ‘박쥐’의 대표적인 레퍼토리 역시 이것이었고, 이후 런던과 뉴욕까지 순회공연을 다녔다고 한다. 발레 뤼스를 이끈 디아길레프처럼 발리예프도 20세기 초반 대표적인 예술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작업하였는데, 강렬한 색감과 의상 등 비주얼과 함께 살아있는 인형극은 인기 있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다면 디아길레프 같은 이가 출현한 것도 우연한 게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어쨌든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고 니진스키가 출연한 발레 <페트루슈카>는 바로 이 발리예프의 살아있는 인형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와 브누아의 공동작업으로, 특히 브누아가 어린 시절 보았던 인형극과 훗날 성인이 되어서 카바레에서 만난 발리예프의 인형극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형극의 영향은 발레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극의 선구적 연출가 메이어홀드의 그로테스크한 총체극으로도 발전되었다는 건 익히 짐작 가능하다. 그의 '생체 역학' 역시 살아있는 기계와 같은 정교한 움직임, 물리적 움직임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체 역학이론은 미국의 대량 생산 공정시스템을 이론화하여 실제로 적용했던 틸러 시스템(Tiller system)과 같은 것으로서, 연극에서 배우의 행위를 기계화하고 기능화하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발레 <페트루슈카>가 나온 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와 브누아에 의해 음악, 대본, 무대디자인이 먼저 완성된 후, 미하일 포킨에게 안무 요청이 이루어졌다. 포킨은 그의 자서전에서 페트루슈카를 가장 완성된 작품 중의 하나로 꼽으며 ”처음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들었을 때 안무하기 어려웠지만, 강력하고 민속적인 음악이 들을수록 흥미롭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였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건 지금 들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그 배경에 이처럼 기계주의와 인간적 욕망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몸의 현장이 있음을 생각해볼 때 더더욱 수긍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