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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ing off

트리샤 브라운, 날아다니는 벽돌로 건물 조립하기?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웹페이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봤던 이런 장면을 기억하는가? 2012년 '무브(MOVE)'라는 전시에 초청되었던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의 퍼포먼스 작품이다. 물론 이건 최근 작업이지만 미술관 벽이나 건물 외벽을 걷는 퍼포먼스 같은 예전 작업은 지금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무대에서보다도 미술관에서 더 친숙한 안무가가 아닌가 싶다. 유럽에선 많이 초청되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녀의 공연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더 이상 보기가 힘들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건 지난 3월 그녀의 타계 소식 때문인데, 간만에 검색하다가 걸린 기사를 보니 참 그녀나 그녀의 작품에 대해서나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내용을 공유해본다. 아래는 데보라 조윗이라는 ‘빌리지 보이스’의 비평가가 그녀를 회고하면서 쓴 글이다.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은 3월 18일 토요일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지만, 2011년 그녀의 마음이 병이 나기 시작한 이래로 몇 년간 필자는 그녀에 대해 애석해했다. 반항적인 1960년대에 필자가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 무용 리뷰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대담하게 인습을 타파하는 저드슨 댄스 씨어터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자 1970년대 그랜드 유니언에서 날렵하고 기민했던 즉흥무용가 중 한 명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춤을 만들고 있다고 할 때 그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1971년 필자는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에서 그녀와 그녀의 무용수가 스스로를 끈으로 묶고 갤러리의 흰 벽면 중 두 면을 걸어 다니며(<벽 위를 걷기(Walking on the Wall)>) 중력에 대한 지각을 변경하는 것을 지켜봤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 다음 우리는 드러누워 천장을 보았고 그녀는 머리 위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장소들의 이름을 읽어주었다.(<스카이맵(Skymap)>)

당시 브라운은 또한 로프나 도르래에 붙어 있지 않은 움직임과 형태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녀의 1971년작 <축적(Accumulation)>의 구조는 오래된 아이들의 게임의 구조였지만, 단어가 아닌 제스처로 하는 것이었다. 즉, 움직임 1, 움직임 1,2, 그리고 1,2,3, 그리고 1,2,3,4 등등이 있다. 몇 년 후, 그녀는 솔로 작품 <말하기 플러스 워터모터와 함께 축적(Accumulation With Talking Plus Watermotor)>를 수행함으로써 기교를 재정의했는데, 여기서 그녀는 두 가지 이야기를 왔다 갔다 하는 한편 제스처, 즉각적인 축적과 폭발적으로 치닫는 <워터모터(Watermotor)> 사이에서 움직였다.

예술 작업에 있어서 트리샤 만큼 장난기 많은 천재는 드물다. 그녀가 건물 위층과 공공 공간 대신에 프로시니엄 무대를 위한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했을 때, 무대 장치와 의상을 위해 아티스트 친구들에게 요청했을 때, 마침내 청중들에게 무거운 호흡과 바닥에서 맨발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보다는 음악을 듣게 했을 때, 그녀는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가령 그녀의 1979년작 <Glacial Decoy>는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사진의 거대한 흑백 프로젝션 앞에서 수행되었는데, 그것은 뒷벽을 가로질러 미끄러져 나와 4장이 항상 보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부풀어 오르는 흰 옷(역시 라우셴버그의 디자인)을 입은 네 명의 댄서는 어떤 주어진 무대보다 더 많은 수평 공간을 사용했다. 주기적으로 댄서는 무대 옆으로 사라져야하고 패턴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브라운 외에 누가 1994년 관객에게 자신의 등을 보여주며 공연하는 솔로를 만들어 <당신이 나를 볼 수 없다면(If You Couldn't See Me)>라는 제목을 붙이고서 무대의 끊임없는 정면 이미지와 다투겠는가? 혹은 그녀의 1990년작 <Foray Forêt>가 춤을 추었던 극장 바깥의 거리를 돌아다니도록 지역의 행진 밴드를 모집할 것인가?

브라운은 바다와 산 사이인 워싱턴의 애버딘에 있는 숲에서 자랐다. 필자는 한때 “그녀의 춤이나 안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그 자체로 당신에게 정면으로 들이대지 않는다. 그것은 물결처럼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에서 힐끗 보이는 그 무엇과 같다.”고 쓰기도 했다. 트리샤가 춤을 출 때, 움직임은 그녀의 몸을 거쳐 흘러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솟구치며 새로운 경로로 전환되었다. 그녀가 공중을 가로지를 때, 마치 어떤 손이 그녀의 등을 뽑아내면서 그녀의 발은 그저 거기에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안무는 그녀의 무용단의 무용수들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교차시키면서 서로 스치거나 슬쩍 지나가게 할 수도 있다. 1980년대 초의 그녀의 춤을 “불안정한 분자 구조”라고 분류하는 것은 그녀로선 아무 소용없는 선택이 아니었다.

1989년 프랑스의 앙제(Angers) 극장에서, 1996년 맨하탄(Manhattan) 맨 서쪽에 있는 그녀의 무용단의 밝은 스튜디오에서 필자가 그러했듯, 그녀의 작업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녀와 그녀의 뛰어난 댄서들이 안무에 관해 함께 노력한 방식에 놀랄 것이다. 앙제에서 <Foray Forêt>의 작업을 하는 댄서들은 이미 많은 동작 소절을 알고 있었고, 그중 하나를, 가령 한 동작 소절의 중간부터 다른 동작 소절의 거의 끝 부분 움직임까지 중 하나를 건너뛰라는 트리샤의 제안에 응답할 수 있었으며, 한편 근처에 있던 한 무용수가 잠시 뛰어들어 그러한 이들과 함께 동작의 일치를 이루었다가 다른 쪽으로 떨어져나갈 수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날아다니는 벽돌로 건물을 조립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서 트리샤는 일어서서 뭔가 놀랄 만한 즉흥을 하고는 댄서들에게 자신이 한 것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 다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버전을 골러낼 수 있다.

1986년 그녀는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di San Carlo)에서 리나 베르트뮐러(Lina Wertmüller)가 제작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안무했다. 그녀가 나중에 필자에게 말했듯이, 그 경험은 그녀처럼 모험심이 있는 작곡가들뿐만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이들과도 협력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다. 그녀는 바로크 폴리포니 작곡법을 배웠으며, 과감하게 자신의 55분짜리 <M.O.>(1955)를 주제적으로 연결된 키보드 규칙과 바흐의 음악적 제안의 푸가에 맞추었다. 무용수들은 멜로디를 따라하지 않았으며, 유사한 구조를 창조했다.

1998년 브뤼셀의 모네왕립극장(Théâtre Royale de la Monnaie)에서 클라우디오 몬트베르디(Claudio Monteverdi)의 오페라 <오르페오(Orfeo)>를 안무하고 연출한 그녀는 대담하게도 무용수와 가수 모두에게 같은 의상을 입혔고 그들을 섞이게 했다. 나는 그녀와 (그녀처럼 음악에 익숙한) 그녀의 무용수들이 가수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모험해나가는 방법을 보았다. 4년 뒤 그녀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슬픈 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에서 어떻게 3명의 댄서와 화려한 영국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Simon Keenlyside)를 엮어냈던가? 그는 무용수들의 들어 올린 발에 뒤로 기대어 노래했고, 그들의 몸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아리아 전체를 불렀다.

트리샤 브라운의 경이로움은 필자에게 있어,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는 결코 양보하지 않고서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 익숙한 예술 모두와 씨름하는 위트와 격정을 의미해왔다. 그녀가 고심한 모든 프로젝트는 우리의 두뇌를 깨어있게 만들었다. <주제가 책의 가장자리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how long does the subject linger on the edge of the volume...)>(2005)에서, 댄서들에 부착된 센서는 스코어와 투사된 모션 캡처 이미지를 촉발시켰다. 2007년 <아이 러브 마이 로봇(I love my robots)>에서, 원격으로 제어되는 두 개의 나무 막대기가 바퀴 달린 작은 플랫폼들 위의 용기 안에서 몸을 흔드는 댄서들 사이로 움직였다.

2011년 2개의 마지막 작품은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고 공간과 시간을 다르게 보도록 알려주는 이 놀라운 무용예술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눈과 영혼(Les Yeux et l‘âme)>(라모(Rameau)의 피그말리온(Pigmalion)을 위한 그녀의 안무에서 발췌)에서, 그녀의 패턴은 마치 춤이 18세기의 정원인 것처럼, 그것을 헝클어뜨리고 싶어 하는 산들바람과 함께, 정교하게 계획되었다. <내 팔을 던지겠다 - 만약 당신이 그걸 붙잡으면 당신 것이 된다(I'm going to toss my arms- if you catch them they're yours)>(2011)에 관해서, 당신은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맞는가?

그녀의 타계는 여전히 바쁜 그녀의 무용단 외에도 많은 유산을 남겼다. 비주얼 아티스트, 조명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댄서, 가수 및 그녀와 협력하기를 즐겻던 무대 인력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에서 빛을 발견했던 전 세계의 모든 이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출처: villagevoi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