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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ing off

팝&아트: 아이 웨이웨이의 강남스타일 다시 보기

 

그렇다. 이건 벌써 한참 지난 얘기다. 갑자기 대중음악 앨범 표지 작업을 한 아티스트 얘기들을 보다가, ‘어 그런 일이 있었어?’ 하지 않았으면 다시 들춰질 일도 없었을 거다.

그렇긴 해도 수갑을 손에 들고 흔들어대는 중국 아티스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강남스타일(Gangnam Style)’ 패러디 동영상이 일으킨 파장은 곱씹을수록 흥미롭다. 과연 반체제 미술가의 아이콘이자 세계 미술계 영향력 상위권에 랭크되곤 하는 아티스트답다고 할 밖에. 더구나 그를 옹호하기 위해 가장 핫한 동시대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까지 나서서 분홍 티셔츠에 입막음 테이프를 하고 수갑 퍼포먼스를 하는(아래 사진, 영상 캡처) 또 다른 강남스타일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하니, 더구나 이 작업에 합류한, 카푸어와 마찬가지로 인도계 영국 아티스트인 현대무용가 아크람 칸(Akram Khan)을 비롯하여 영국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타마라 로조(Tamara Rojo) 등 그 면면까지 화려한 아티스트들의 대거 참여를 이끌어내었다고 하니, 미술과 무용을 아우르며 두고두고 회자될 일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은 아이 웨이웨이의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을 접속해도 블록 되는 일이 없고, 아니쉬 카푸어의 영상은 오히려 접속이 안 된다. 다만 관련 내용을 다뤘던 가디언지의 기사에 가보면 동영상을 따로 올려놓고 있어서 아예 못 보는 건 아니다. , 세월이 많이 지나긴 지났군... 그렇긴 하지만 오히려 검열 문제를 따지자면 지난겨울을 거쳐 촛불과 함께 뜨거웠던 블랙리스트 논란을 거쳐 왔으니,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 얘기가 아니었던 거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아이 웨이웨이는 어쩌다가 강남스타일같은 대중음악을 자신의 작업으로 전유해버린 걸까. 그의 패러디에 대해 다루면서 이런 예술과 팝 사이의 논란을 다시 들여다본 2012년의 기사를 새삼스럽게 아래에 옮겨와 본다.

영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은 아이 웨이웨이(Ayi Weiwei)를 지원하기 위해 강남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예술가가 팝 음악에 발 담글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런던에 있는 아니쉬 카푸어의 스튜디오에 예술가 그룹이 모여 아이 웨이웨이를 지원하는 싸이(Psy)의 괴물 같은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패러디를 촬영한다. 이는 지난 달 그 춤을 추는 아이 웨이웨이와 그의 친구들의 클립이 삽입된 오리지널 버전이 나오는 아이 웨이웨이의 자체 버전에 이은 것이다. 이 비디오는 인터넷을 휩쓸었는데, 주로 K-pop에 맞추어 익살을 부리는 이 유명 아티스트의 코믹한 호소 덕분이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전복의 기미를 감지하고 그것을 금지했다. 아이 웨이웨이의 비디오는 정부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서 금지한 중국 욕설에 대한 레퍼런스인 ‘Grass Mud Horse Style’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어느 순간 그는 수갑을 차고 있다 - 아마도 올해 초 그의 구금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그는 국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카푸어의 희망은 안무가 아크람 칸이 공동 연출하고 댄서, 배우, 음악가 및 아티스트이 등장하는 그의 버전이 마찬가지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진술을 하기 위해 엄청난 팝 히트곡이 재작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흥행주 역할을 할 때, 그리고 존 레논(John Lennon)이 요코 오노(Yoko Ono)를 세계 최대 밴드의 심장부로 데려 왔을 때, 예술가들은 메인스트림을 납치하고 차트의 거칠고 불규칙한 구역에 들어서려고 시도했다. 음악가들과의 우정, 다른 미디어에 손을 미치려는 자연스러운 욕망, 그리고 종종 예술학교 배경을 공유한 덕분에 시각예술가 디터 로스(Dieter Roth)에서 티아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은 다양한 결과로 자신들의 작업에 공연 및 레코드를 추가했다.

일부는 히트작을 낸다. 1982, 아방가르드 예술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은 그녀의 미니멀리스트 보컬을 담은 노래 ‘O Superman’으로 영국 차트에서 2위에 도달했을 때, ‘Top of the Pops’의 시청자는 물론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16년 후 덜 지적인 스타일로 음악 그룹 팻 레(Fat Les)의 일원으로서 같은 정점에 올랐는데, 이 그룹의 ‘Vindaloo’1998년의 비공식 잉글랜드 축구 노래였다. 다른 이들은 컬트의 길을 선호했다. 영국의 주요 개념예술가 샘 테일러-우드(Sam Taylor-Wood)는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주뗌므 (므와 농 플뤼)(Je t'Aime (Moi Non Plus))’에 관한 테이크에서 신시사이저를 건드리며 페이크 오르가즘에 이르는 것을 포함하여, 영국 일렉트로닉 팝 듀오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와 함께 세 가지 우아한 일렉트로닉 커버를 만들었다. 한편 그들을 본 소수의 사람들은 퍼포먼스 아티스트 리 보우어리(Leith Bowery)의 뮤지컬 프로젝트인 ‘Mithy’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티스트 세리스 윈스 에반스(Cerith Wyn Evans)를 포함하며, 보우어리가 그의 아내인 니콜라 베이트먼(Nicola Bateman)을 무대 위에 탄생시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20세기 예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조차도 1982년 팝 싱글 ‘Sonne Statt Reagan’을 만들었다. 보이스는 앞뒤 맞지 않게 쾌활한 유로 록(euro-rock)에 반핵 메시지가 있는 그의 가사를 음조에 맞지 않게 읊조렸다. 그의 표준 유니폼인 청바지, 펠트 모자 및 낚시 조끼를 착용하고 독일 TV에서 공연하는 불가사의한 유튜브 클립이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보이스의 나머지 시도에서 제거되어 많은 비평가들이 이상한 탈선으로 취급하는데, 어떤 이들이 아이 웨이웨이의 강남스타일을 비웃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마도 보이스가 가능한 한 가장 대중 친화적인 방식으로 자신에게 중요한 정치적 진술을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기괴해요.”라고 말하는 시각예술가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는 자신의 신랄한 드로잉과 함께 여러 말로 된 음반을 발표했다. “보이스는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요. 대단한 즐거움의 감각이 있어요.”

때때로 음악은 예술과 결합하여 진정으로 멋진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워홀과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Exploding Plastic Inevitable’을 내놓았을 때, 고막을 찢는 듯한 볼륨으로 연주하는 밴드와 필름 프로젝션, 눈이 부시게 하는 스트로브 라이트, 그리고 시인이자 아티스트인 제럴드 말랑가(Gerald Malanga)채찍 댄스가 등장했다. 이후로 레이디 가가에서부터 올 봄 뉴욕 모마에서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전 앨범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EPI’의 영향이 아트/팝의 조우에서 느껴질 수 있었다. 이달 말, 쾰른 웨스트엔드의 아트-록 페스티벌에는 데이비스 슈링글리의 비주얼이 등장하며, 한편 미국 뮤지션 스티븐 말크머스(Stephen Malkmus)는 캔(Can)의 앨범 ‘Ege Bamyasi’를 커버하면서 상위 순위에 올랐다.

확실히 예술학교에 다녔던 뮤지션의 수는 광범위하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흡수했던 상황주의(situationism)의 연장으로서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매니지먼트를 경험한 기획자이자 연출가, 비주얼 아티스트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에서부터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The Clash)와 싱어송라이터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의 쓰리 쿼터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싱어송라이터 피터 타운젠트(Peter Townshend)는 아티스트 구스타프 메츠거(Gustav Metzger)가 가르쳤고, 그의 자기해체적 예술에 대한 이론은 타운젠트의 기타-스매싱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밴드의 대부분은 예술학교 교육을 자신들의 음악에 적용했지만, 그 과정은 다른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영국 아티스트 엘리자베스 프라이스(Elizabeth Price)는 러스킨(Ruskin)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1980년대 인디 밴드 ‘Tallulah Gosh’를 공동 설립했으며 올해 터너(Turner) 상을 수상했다. 시각예술가 수 톰킨스(Sue Tompkins)는 글래스고 예술학교에서 ‘Building Without Lifes’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끊임없는 펍(pub) 공연과 티셔츠 프링팅의 전망에 놀랐다. 그러나 밴드의 대변인(frontwoman)으로서 배운 것들은 그녀의 아트워크에 영향을 미쳤고, 그 중 일부는 시와 가사를 기반으로 한다. “갤러리에 참여하도록 요청받았지만 펍에서의 공연이나 시낭송의 밤 공연에도 참여해야 해요. 섞이는 게 있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예술가가 음악을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아마도 감정과 신체에의 직접적인 호소력이 때문이다. 예술 - 특히 개념 예술 - 은 더 지적이다. “내가 비디오나 예술 작품을 만들 때 음악의 조건을 갈망한다.”고 또 다른 터너상 수상자인 마크 레키(Mark Leckey)는 말했는데, 그는 ‘donAteller’, ‘Jack Too Jack’, ‘Genital Panic’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드를 만들었다. ‘Human Resource’‘Dominator’와 같은 레이브 클래식 커버에서부터 소호 거리에서 녹음된 추상적 사운드스케이프에 이르기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나는 피할 수 없이 음악을 만들게 돼요. 예술과 함께 항상 지적 장벽이 있어요. 음악은 직접성과 물리적 효과가 있어요. 컨템퍼러리 아트는 개념적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고 개념적 아이디어로 되돌아갈 수 있죠. 그것은 텍스트의, 언어의 영역에 머무를 수가 있고, 음악에는 그것을 탈출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레키는 그가 ‘Acen’‘Trip II the Moon’과 가수 조너선 리치먼(Jonathan Richman)‘Roadrunner’라는 두 개의 레코드를 듣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악들이 내게 성취해주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내가 성취할 수 있다면, 나는 매우 행복할 겁니다.”

비주얼 아티스트는 뮤지션을 질투하는가? “세상에나, 그렇지요.” LA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이자 밴드 'Layer Cake'의 전 구성원인 프랜시스 스타크(Frances Stark)는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큐비스트의 악기 콜라주조차도 진짜로 움직이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 “음악이 하는 일은 10,000[더 효과적]이에요.

하지만 한 예술 형식에서 훌륭하다는 것은 다른 예술로 그러한 스킬들을 이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슈리글리는 심사숙고한 프로젝트의 일부일 때 더 성공적인 경향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의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그의 프로젝트와 함께 정말로 훌륭하고 지속적이에요. 하지만 오노 요코(Ono Yoko)는 하나의 좋은 트랙 - Why Not [Plastic Ono Band] -를 만들었고 나머지는 쓰레기에요.” 슈리글리는 밴드에 있곤 했지만 그는 낭독 레코드를 만드는 것을 고수할 거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음악을 만드는 것은 중년의 허영심과 절망에 시달리는 것이고 나는 그 시나리오를 피하려고 해요.

이것은 예술가가 레코드를 만드는 최종적이고 보다 피상적인 이유를 건드린다 - 스튜디오와 갤러리보다 화려하고 강렬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이것이 허스트에게 1998‘Fat Les’(다른 멤버들로는 Keith Allen, Alex James가 있다)에 참여하도록 동기부여를 한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불공평할 수 있지만, 그는 확실히 인상을 남겼다. 아마도 오늘날의 강남스타일의 헌정에 참여한 예술가들 중 일부는 비슷한 동기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의 목표는 문화의 가장 강력하고 끝없이 적응할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인 대중(pop)의 힘을 사용하여 가능한 가장 메인스트림의 방식으로 동료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theguardian.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