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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붙든 <역적>과 5.18의 광주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을 보다 보면, 뒤로 갈수록 어떤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홍길동(윤균상 분)이 아기장수의 힘을 어렵사리 되찾아 괴력을 발휘하며 해결사로 나서는가 싶더니, 영웅의 수퍼파워에 기대는 그런 방식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아마도 향주목의 장면부터였던 것 같다. 이는 길현(심희섭 분)의 말에도 잘 나타나지만 길동이 아무리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규모 진압을 위해 동원된 임금의 군대를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예사롭지 않음은 이 지점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누가 봐도 향주는 광주를 떠오르게 한다. 연산군(김지석 분)의 폭정을 비판하는 백성을 반역 집단으로 몰아 관군을 보내 무참하게 짓밟는 장면은 일종의 ‘데자뷔’ 현상을 일으킨다. 알려져 있다시피, 군부독재 시절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세력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했다. 시위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진압에 무수히 쓰러졌고, 이에 분개한 광주시민들이 시민군을 조직하여 격렬히 저항했다. 군대와 시민이 대치하는 10일 동안 광주는 고립되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더 심하게는 ‘폭도들의 무법천지’로 광주를 묘사했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군부대를 임금의 관군으로, 광주 시민들을 향주목 백성들로, 아리랑과 애국가를 ‘익화리의 봄’으로 바꾸기만 하면 바로 <역적>의 향주목 장면이 되는 것이다.

“봄이 와도 봄이 온다 말을 못 하고 동장군이 노할까 숨죽여 웃는다. 해가 떠도 해가 뜬다 말을 못 하고 밤바다가 노할까 숨죽여 웃는다...”

이제까지 홍길동이라는 영웅은 현실에서의 결핍을 대변하는 얼굴이었지만,(관련: 영웅 판타지 권하는 요즘) 이 노래를 다 함께 부르는 순간 그 얼굴은 백성들의 것으로 대체된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필요를 남을 통해 투사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대변하는 이들이 된 것이다. 어쩌면 길동과 같은 영웅의 진정한 역할은 거기까지인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에게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영웅을 끄집어내주는 그 역할 말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혹은 기대하는 홍길동의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건 어쩌면 오히려 ‘사이다’라기보다 다시 생각해보면 공허한, 그런 지점이 아닌가. 그런 걸로는 진정한 문제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짠 하고 나타나 뭔가 뚝딱 끝내놓긴 하지만 언제고 또 다시 일이 발생할 때 또 영웅을 기다리란 말인가. 그건 어떻게 보면 일시적인 대리만족 혹은 현실도피일 뿐 아닌가. 혹은 언제고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임시방편적인 극적 장치일 뿐이다. 작가는 필시 이런 게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보다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성찰이 이렇게 영웅서사의 색다른 변종에 다다르게 된 것 아닐까.

사실 이 과정은 지난겨울 촛불과 함께 우리가 거쳐 온 그 과정 아닌가. 박정희라는 영웅서사에 기댄 선택이 초래한 결과를 맞닥뜨리고서, 남이 아닌 스스로 스스로를 대변하기 위해 촛불을 들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결국 <역적>에서도 백성들이 저마다 횃불을 들고서 “임금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중종반정은 역사적 사실이고 이처럼 현실과의 싱크로율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새삼 놀라울 수밖에 없다. 또한 전체적으로 영웅서사의 구조를 따르긴 하지만, 이처럼 그 전형을 벗어난 새로운 해석을 마지막에 음미하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