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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레인져스를 좋아한 어떤 아이의 반전

 

며칠 전에 만난 어느 선배의 아이는 그때 파워레인저를 엄청 좋아한다고 했다. 네 살짜리 여자애인데, 어 이거 여자애 취향이 아닌데, 싶었다. 워킹맘인 그 선배는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통 몰랐던 아이의 취향을 여름휴가 다녀온 사이에 비로소 파악하게 된 거였다. “저 오빠들 너무 좋아, 멋있어!” - 이게 과연 네 살짜리 아이가 할 말인가 - 라는 아이의 멘트는 그 선배에게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조카에게 쟤 파워레인저 무지 좋아해. 몰랐어?”란 핀잔이나 듣다니, 엄마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고 했다.

물론 그 여자애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언어 표현이 특이하고 재미있는 편이었다. 선배는 그런 딸아이를 기특해 했지만, 한편으로 자기 아이가 보통 여자애들의 보편적 증세인 공주병도 없고, 발레 같은 거 보여줘도 심드렁해 한다고 걱정이었다. 6학년짜리인 언니네 딸내미는 오페라나 발레 같은 거 보러 가면 좋아하는데 왜 우리 딸은? 그런 데 같이 가고도 싶은데, 얌전하고 조신하게 커주길 바라는 맘이 굴뚝같은데, 전혀 딴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사실 그 선배 역시 전혀 공주과가 아닌데 자기 아이는 반대이기를 바라는 심리는 또 뭘까.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날린 멘트는 이러했다. “애 취향 거참 독특하네.” 이런 거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처음이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조언해줬다. 그럼, 애한테 현대 발레 보여줘 보는 건 어때? 아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걸로. 발란신 같은 거 좋겠네. (그러고 보니 요번 6월에 국립발레단 갈라에 발란신 레퍼토리가 있다) 아니면 인형극도 좋아하겠다. ... 차라리 미술관이 좋을 것 같기도 해. 언제 했더라. 마크 로스코 전 같은 거. (지난 해였던가. 스티브 잡스가 즐겼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리는 바람에 깔려 죽는 줄 알았다.) 암튼 색면추상, 딱인데 그래. 아님 피카소 전 같은 거 괜찮을 듯한데?

사실 아이 때부터 벌써 프릴 달린 예쁜 옷 입은 공주 왕자 나오는 고전 발레가 싫다면, 바로 넘어가야지 어쩌겠나. 보통 단계를 거쳐가기 마련인데, 이렇게 단숨에 건너뛰기도 하는 하는구나. 사람마다 다른 기질이나 취향이란 게 확실히 있기는 있나 보다란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선배는 아이가 미술, 특히 색채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며 마크 로스코 전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런데도 직장에 매여 그런 데 가기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 아이는 위너(winner)'의 팬이 되어 있는 거다! 여자애로서 드물게 기하학적 취향, 기계에 대한 취향을 지녔다기보다 방점은 오..에 있었나보다. 한창 아이돌에 빠질 때라서 그런 건가? 암튼 왠지 좀 배반당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또 뭐가 있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다. 또 크다 보면 저 기질이 다른 형태로 발현될 수도 있으니까. 암튼 저 애는 자기가 파워레인저를 좋아했다는 걸 기억할까? 또 지금 봐도 좋아할까? 요즘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 영화가 실사판으로 개봉된 걸 보니 부쩍 그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