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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 송혜교의 '태양의 후예' 즈음의 연극

 

그 이름도 찬란한 이른바 '송송커플'이 '세기의 커플로' 거듭난 요즘 '태양의 후예'도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이 드라마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즈음 우연히 보게 되었던 연극 때문이었는데, 바로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그것이다. 같은 군인인데 어쩜 저렇게도 다를까, 하면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나름 있었다고 할까.

 

보송보송하면서도 때로는 근육질의 몸까지 드러내는가 하면, 시시각각 멋진 심쿵 멘트 날리면서도 군인정신 투철한 '일 잘하는' 남자에, 참 어이없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눈을 뗄 수 없다는 이들이 주변에 꽤 많았다. 한편으로 국가 이데올로기를 치장하는 온갖 판타지를 다 갖다 붙여놓은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러는 걸 보면, 유시진 대위를 연기한 송중기라는 배우의 매력이 꽤나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박근형의 연극에 나오는 군인들은 얼마나 다른가. 뉴스에서 가끔 접하기도 하지만, 군을 못 견뎌 탈영하거나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는 병사의 잔뜩 방어적이거나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이다. 이러한 지금의 탈영병과 일제 강점기 시대 가미가제에 동원된 조선인, 백령도 초계함의 해군들, 이라크 무장단체에 붙잡힌 선교사 등 각각의 시간 트랙들이 교차편집 되면서 펼쳐지는 이 연극은 결국 '국가가 개인에게 휘두른 폭력'에 대해 묻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실감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고 보면 전혀 아무것도 아닌 무엇을 틀어막는 구멍마개 같은 게 국가 이데올로기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게 전혀 필요 없다는 건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그게 과도해져서는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 아닐까. 그중 하나가 아무래도 박근형 연출가가 관련된 ‘블랙리스트’ 파문일 것이다.

지난해 이 연극으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올해의 연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컨템퍼러리 공연예술축제로 명망 있는 일본의 ‘페스티벌 도쿄(Festival Tokyo)’에도 초청되었다고 한다. "동시대적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이 작품은 “검열 논란의 중심이 된 작품이었고,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공연될 때는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날 즈음이었다. 그리고 올해 재공연을 시작하기 나흘 전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연출가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국가를 대신해 희생한 군인들 얘기다. 동의하지 않는 관객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이 많은 걸 보니 좋은 연극인 것 같다(웃음).”

“박 연출의 말마따나 그들의 삶을 재현하는 연극의 시선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군인이, 그리고 모든 사람이 불쌍하다는 주제에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세상을 사는 것은 이미 전쟁이므로.”(중앙일보 인터뷰 중)

동아연극상 수상작 소개에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군대를 배경으로 폐쇄적 국가시스템을 비판한 작품이다. 극단 골목길의 수장인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작·연출을 맡았다. 특히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우수 공연작품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됐다가 포기 종용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연극 검열 문제의 도화선이 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군대라는 특수성 짙은 소재를 인간의 비극이라는 보편성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였다”며 “연출, 연기, 무대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어쨌거나 ‘모든 군인이 불쌍하다’는 올해 남산예술센터 재공연에 이어 지역 투어도 꽤 요구가 있는 것 같고, 또 언젠가 다시 볼 기회도 있을 것이다. 화제성으로 주로 다뤄지는 편이었던 것 같지만, 작품 그 자체로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어찌 됐든 동시대에 한 획을 그은 연극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태양의 후예’는 어떻게 보면 이 연극을 배면에 깔고서, 알려져 있다시피, 더욱 휘황한 판타지의 마법을 발휘한 셈이다. 기묘하게 맞물렸던, 동전의 두 양면 같은 작품이랄까. 그나저나 송중기, 송혜교 커플은 판타지를 넘어 현실이 되었다. 근데 그 현실이 매우 판타지 같은 건 또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