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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 미술관에서 패션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패션 전시가 꽤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건 예술이 팝이나 커머셜의 영역을 포섭하는 것인지, 혹은 새로움에 대한 업계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인지 - “진보한 패션은 박수를 받고, 진부한 패션은 외면 받는다.”는 멘트가 있기도 하지만 - 명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래의 기사에서는 다소 후자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데,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본다.

 

 

디지털화의 증가와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인 증가는 패션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경험 및 소비를 위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압박을 가했다. 프레젠테이션, 프로덕션 및 커뮤니케이션의 리듬은 시즌이 이어지면서 한결 더 박차를 가하고 창의력을 쥐어짜게 한다.

 

패션 하우스의 예술적 방향은 브랜드가 적설성과 반향을 위해 다투면서 빠른 속도로 전환한다. 인터넷은 끊임없이 이미지와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내지만, 이것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통찰력, 분석 및 역사적 맥락화를 위한 여지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1(-여름과 가을-겨울)마다 두 개의 런웨이 시즌의 전통적인 리듬은 이미 과거의 일이며, 일부 디자이너는 현재 일 년에 8개 이상의 컬렉션을 만들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창조성, 혁신성, 독창성 및 작가성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패션 언론계와 전 세계의 뮤지엄 모두에게 있어서 20세기 후반의 독특한 패션 비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앤트워프(Antwe)의 패션 뮤지엄인 MoMu에서 현재 벨기에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1997~2003년 프랑스 패션 하우스인 에르메스(Hermès)에서 여성 기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기간을 망라하는 전시를 개최한다. 내년에는 파리의 두 패션 뮤지엄 중 하나인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가 마르지엘라 자신의 레이블인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의 회고전을 헌정할 것이다.

 

지난 5월 첫 번째 월요일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의상 연구소(Costume Institute)1983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이래로 살아있는 디자이너에게 헌정된 최초의 전시인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라는 일본 레이블의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에 관한 전시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위 사진)

 

그리고 2016년과 2017년에는 스페인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와 같은 20세기 중반의 가장 위대한 개척자 중 한 사람의 작업에 헌정한 여러 전시가 있었다. 지난 3월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발렌시아가, 흑의 작품(Balenciaga, L‘oeuvre au noir)”을 오픈했으며, 527일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는 발렌시아가: 패션의 형성(Balenciaga : Shaping Fashion)”을 선보였다.

 

그는 또한 20세기에 여성의 실루엣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수세기 동안 여성 패션을 지배해온 모래시계(hourglass) 실루엣의 대안을 만든 디자이너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MoMu2016년 전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s)”의 중심에 있었다. 20세기 중반 그의 급진적인 혁신 - 부피가 큰 풍선 밑단, 떠다니는 베이비인형, 조각적 변화 - 은 코코 샤넬(Coco Chanel),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및 폴 푸아레(Paul Poiret)와 같은 초기 개척자들을 마르지엘라와 카와쿠보를 포함하여 이후의 세기 후반 형식의 혁신가들과 연결시켜준다.

 

그러나 왜 이것이 지난 세기 후반의 개척자들에 대한 뮤지엄의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켰을까? 이익을 위한 패션계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이러한 디자이너들의 현재적 타당성은 무엇인가? 그들의 통찰력과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여전히 증대되는 압박 아래에 있는 패션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70년대부터 카와쿠보는 어떤 형태의 역사적 맥락화를 없애고 절대적 혁신으로 자신의 작업을 제시했다. 그녀의 작업에서 문화적, 역사적 참조물 또한 발견될 수 있지만, 그녀는 과거를 현저하게 거부한다. 모든 컬렉션을 통해 그녀는 텅 빈 목록으로 시작하고자 하면서, 형식, 성별, 스타일 및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 개념에 도전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이를 아주 잘 보여준다. 의상은 처음 보기에 참조물이 결여된 것 같은 미래적이고 추상적인 풍경처럼 보이는 것으로 배열된다. 이런 식으로 작품들은 기능적 의류가 아닌 개념이나 제안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아이디어와 형식이 반복되는 패션의 순환적 특성을 뛰어넘는 급진적인 시도이다. 결국 패션이 주기적으로 작동한다면, 진화의 여지는 어디에 있는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