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ing off

전주국제영화제 기대작과 함께 연휴를

엘비 2017. 4. 25. 18:38

 

뒤늦게 후회하는 것보다 미리 갈등 때리는 게 낫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경우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에는 후자의 상황에 봉착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봉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이야 또 기회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고,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반가운 목록 중 하나는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영화인데,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는 단편이다. 여기저기서 그 이름을 마주치다 보니 궁금했는데, 이 영화제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와 텍스트에 대한 사유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감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데, 단편이지만 뒤늦게나마 아쉬움을 달래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장-마리 스트라우브, 당신은 어디에>라는 제목의 단편은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의뢰하고 아르테가 제작에 참여했다.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최신 단편영화. 자유 형식으로 만들어진 <장-마리 스트라우브, 당신은 어디에>의 주인공은 고양이다. 고양이들이 의자에서 장난을 치고 앉아 있을 때 화면 바깥에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화면이 바뀌면 우리는 소파에서 고양이의 털을 고르는 여자를 본다. 뒤이어 같은 장소에서 스트라우브가 고양이를 어루만진다. 고양이에 관한 홈 비디오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스트라우브의 단순한 응답이다."(jiff.or.kr 참고)

이건 단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단연 시선을 끄는 영화는 또 있다. 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케이트 블란쳇이 저 위의 사진처럼 1인 13역으로 분한 <매니페스토>이다. 지난해 미술관 버전으로 소개되어 꽤 입소문이 났던 작품인데, 이번에는 영화 버전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를 감독한 줄리안 로즈벨트(Julian Rosefeldt)의 작품은 뉴욕 MoMA를 비롯한 세계 유수 미술관과 컬렉터들이 주목하고 있다는데, 케이트 블란쳇 역시 베를린에 방문했을 때 그의 전시를 보고 반했던지 즉석에서 재능 기부를 약속했다고 한다. 감독은 이후 작품 콘셉트를 준비했고 이들은 작가와 영화배우로서라기보다 협업자로서 아이디어를 긴밀히 교환해가며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 시리즈는 매니페스토 뿐만 아니라 블란쳇의 오마주(homage)이기도 하다.

"총 12편(프롤로그 1편)의 영상작품에서 교사, 펑크족, 퍼펫티어, 주식투자상담사, 노숙자, 매니저, 과학자, 장례식 주관자, 생산 근로자, 안무가 등으로 분한 블란쳇은 각 역에 맞는 연기력과 현란한 비주얼로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다. 할리우드도 울고 갈 완벽한 세트, 때로는 6시간 이상 걸렸다는 분장, 버즈 아이 뷰, 로 앵글, 클로즈 업 등 현란한 영화적 촬영 구도와 기법을 사용했지만,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연출했다. 때로는 영상 촬영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보이는 실제와 또 다른 실제를 부담 가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섞어 놓았다.

율리안 로제펠트는 <매니페스토전>을 위해 지난 170년간 발표된 예술, 창작인의 매니페스토를 최대한 수집했다. 시인인 트리스탄 차라와 앙드레 브르통, 작가인 카지미르 말레비치, 클래스 올덴버그, 솔 르윗, 무용가 이본 레이너,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 그리고 영화감독 짐 자무시 등 60여 개 매니페스토를 모을 수 있었고 이를 12편의 연설문 형식이 아닌 연기할 수 있는 텍스트로 줄이고, 편집했다고 한다. 작가는 창작하지 않았고 단지 콜라주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텍스트는 각 에피소드에서 역설적이며,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형식으로 드러난다. 사조는 다다이즘부터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플럭서스,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공산주의적 사고까지 총망라했다."(월간미술 2016년 6월호 중)

12개의 영상 설치와 함께 공간의 치밀한 연출로 이뤄졌던 전시 버전이 어떻게 영화로 편집되었을지 비교할 수 없으니 아쉽지만, 어느 하나라도 봐야 얘기가 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그 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조망하는 이창재 감독의 <N 프로젝트>, 양익준의 출연 등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목 받은 <시인의 사랑>, 국제경쟁 부문에 오른 유일한 한국 영화인 정윤석 감독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등도 눈길을 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개척한 미셸 오슬로, 짐 자무쉬 감독 등의 이름도 눈에 밟힌다. 연휴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전주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분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