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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브로코비치의 매력

 

최근에 다시 접하게 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얼마 전에 채널 CGV에서 방영한다고 해서 눈여겨봤는데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보기도 오래간만이었다. 워낙에 이 영화에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에 대한 찬사를 익히 들어오기도 해서 궁금증이 발동했다고 할까. 어느 영화 평론가의 논평이 예고편에 인용되기도 했지만, 줄리아 로버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고 있는 영화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녀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매우 다면적이어서, 가장 여성적이면서도 가장 강하고 번뜩이는 순간들을 시시때때로 드러낸다. 흔히 여성, 특히 미녀에 대해 갖는 편견들을 깨고자 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있지만 - 그러고 보니 최근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으로 개봉한 <미녀와 야수>의 벨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한다 - 그중에서도 실화에 기반한 현실의 묵직함과 더불어 가장 매력적으로 여성성을 조명하고 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루이즈 부르주아라는 작가가 다산과 풍요의 여성성을 거대하고 강건한 거미의 모습으로 드러내 반전의 이미지를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심지어 그러한 이미지조차 편견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에린이지만 흔히 보는 '억척 어멈'으로 한정짓기도 애매하고, 또 수퍼우먼의 매끈함으로 포장될 수도 없다. 정보지를 뒤지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좋다며 거리낌 없는 패션을 과시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해를 많이 사고 부당한 일도 당하지만, 그러한 사태를 초래한 편견은 한편으로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거대기업이 흘려보낸 오염 물질 수치에 대한 자료는 그렇게 해서 그녀의 손에 들어왔고 사태를 전환시킨다. 결국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갇히기보다는 삶과 현실과 부딪히면서 어떤 특질들을 끌어내 적절히 대처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말하자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 라는 ‘수행성’이라는 측면에서 여성 이미지에 대한 의외성들이 돌출하고 그것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전형성을 벗어난, 사이다 같고 강렬한, 센스 충만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지적인 캐릭터를 더 없이 매력적으로 빚어낸 줄리아 로버츠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