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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모던 가구 찾기

 

올해 초에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전시를 보고 나서 아트숍에 들러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눈에 들어왔던 것이 저런 사각 상자 형태의 가구였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이기도 하지만 화가이자 디자이너이기도 하다는 걸 다시금 의식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인체를 기본으로 모든 수치들을 추출해내는 그의 모듈러 이론을 더욱 강하게 의식하게 하는 매우 단순한 블록 단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더니스트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 방법론인 모듈러를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건축과 기계류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간 척도에 부합하는 조화로운 측정의 범위.”

이는 또한 건축 과정에서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기본 단위가 다른 탓에 불거지는 척도와 비례의 혼선을 해결하는 표준화 과제의 일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비례와 조화의 차원에서 이념적으로 제시되었을 뿐 기준이 되는 표준 신장도 나라마다 다르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곤 한다.

모듈러를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인간의 활동 반경에 대한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의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isgn)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는데, 사용자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사용자의 신체 크기 및 자세, 손이 닿고 조작하기 적합한 치수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모듈러는 불변의 가치를 갖는 기하학과 인간 사이에 공통요소를 확립하려고 시도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인체측정학적 치수를 미학적 비례와 동일하게 만듦으로써 공통요소를 만들고자 하였다.”(위키백과 참고)

이 시기는 유난히도 인체를 기하학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보인다. 라반이라는 무용가 역시 인간 동작을 연구하면서 20면체 안에 인체의 모든 반경을 분석해서 집어넣었는데, 모듈러의 접근 역시 비슷해보인다.

19465월 미국 방문 당시 프린스턴대에서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나 모듈러에 대해 대화할 기회를 얻은 르 코르뷔지에는 의외의 큰 도움과 격려를 받고 고무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한 장면이 전시장으로 옮겨오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과학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이론을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던 듯하다.

아마도 저 스툴 역시 모듈러로부터 파생된 치수에 근거해서 만들었을 듯한데, 모듈러의 바탕을 이룬다고 하는 황금분할이나 피보나치수열 같은 걸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례상 뭔가 좀 달라 보인다고 할까. 모듈러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을 좀 더 참고해보자.

그가 제안한 모듈러의 모든 치수들은 이웃하는 치수와 황금비의 관계를 갖는 수열을 이룬다. 이와 같이 비례가 보존되기 때문에 큰 규모의 치수들 간의 관계는 작은 규모의 치수들 간의 관계와 같게 되며, 스케일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모듈러를 작은 크기의 산업 생산품에서부터 대규모의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상물에 적용 가능한 치수 체계 및 디자인 도구가 된다.”

물론 의자나 다른 가구들이 전시장에도 있긴 했지만 저건 유일하게 구매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가구였다. 거장의 작품을 가구로 들여놓는다는 거창한 느낌은 아니더라도 뭔가 색다르긴 했다. 어쨌거나 일단 그 심플함과 자유로운 활용 가능성에 이끌려서, 이게 여기 아니더라도 과연 구매할 수 있는 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LC14 모델로 알려진 이 스툴을 찾다 보니, 이것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가구들도 구할 수 있는 한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모던 가구의 시조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을 짬짬이 감상해볼 만하다.